레이블이 잉글랜드 대표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잉글랜드 대표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9년 11월 3일 화요일

베컴, AC밀란으로 재임대 확정!!!

David Beckham / CCL / Google Image


미국 메이저 리그 LA 갤럭시 소속의 데이비드 베컴이 AC밀란으로 재임대가 확정됐습니다.

베컴은 현지시간 2일 LA 갤럭시 홈페이지를 통해 AC밀란으로 재임대가 결정됐음을 전했습니다. 베컴이 밀란으로 임대를 가는 이유에 대해 베컴은 '월드컵에 나설 잉글랜드 대표팀의 최종 엔트리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 밀란으로의 임대는 내 꿈을 도와줄 것'이라며 이번 임대가 내년 여름에 열릴 2010 남아공 월드컵 출전을 위한 것임을 밝혔습니다.

지난 1월에도 밀란으로 임대됐던 베컴은 계약 상으로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가 개막하는 3월까지만 단기 임대로 계약이 되었으나 시즌 개막까지 임대 기간을 연장하며 밀란에 대한 애정을 보였고 밀란에서 빠른 적응력을 보이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으며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이끄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미국 축구 팬들은 자신들과의 계약을 등한시한 베컴에게 등돌렸고  미국에 복귀해서도 팀 동료들과 마찰이 생기는 등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베컴은 미리 방석을 깔며 'LA갤럭시와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오랜 기간 활동할 것이며 미국 축구를 부흥시키겠다는 열정은 아직도 여전하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갤럭시의 MLS컵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한 밀란에서 보낸 시간을 정말 즐거웠다. 밀란 선수들 그리고 스태프들과 다시 만나는게 너무 기다려 진다'며 미국 팬들에게 감사와 사과의 말을 전하는 동시에 밀란 복귀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습니다.

베컴의 재임대를 확정지은 후 밀란의 아드리아노 갈리아니 부구단주는 '베컴이 다시 돌아와 우리 유니폼을 입게된 것이 정말 행복하다. 그는 지난 시즌에 눈부신 플레이를 해줬으며 밀란은 그가 샐럭시 선수로 뛰면서도 다음 월드컵 본선에 나설 수 있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라며 그의 월드컵 출전 꿈이 이뤄지길 기원했습니다.

올시즌 초반에 역대 사상 최악의 팀이라는 말을 들으며 힘겨운 시작을 했으나 최근 호나우지뉴가 서서히 살아나는듯 하며 레오나르두 감독의 지도력이 재조명 받으며 상승세를 타고 있고 챔스리그에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레알 마드리드 홈 구장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역전 승을 거두며 많은 상승세를 거두고 있는 밀란에게 베컴은 또다른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베컴도 나이가 들긴 했나보네요. 사실상 이번 월드컵이 그에게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이며 꾸준히 경기에 임하지 않는다면 체력적인 면에서 뒷바침해줄 수 없기에 대표팀에 승선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아직도 최고로 인정받는 것이기에 열심히 한다면 베컴이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2009년 9월 25일 금요일

솔 캠벨, 5주만에 팀과 결별 - 그의 미래는??

http://commons.wikimedia.org / Sol Campbell / CCL

올 여름 리그2(잉글랜드 4부리그) 노츠카운티로 이적을 감행해 축구팬들에게 충격을 줬던 전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솔 캠벨이 5주만에 그것도 단 한경기만 치르고 팀과 결별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솔 캠벨을 올 여름 포츠머스와의 계약이 종료된 후 재계약도 수면위로 떠올랐고 기타 여러 빅클럽에서 그를 영입하려고 손을 벌렸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바램과는 달리 노츠카운티의 단장이자 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인 스벤 고란 에릭손의 설득으로 충격적인 이적을 감행했습니다.

솔 캠벨의 입단 조건은 노츠카운티와 5년 계약에 은퇴 후 코치직까지 보장해주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캠벨은 단 5주만에 리그 경기 단 한게임만 뛰었고 자신의 데뷔전이 패배로 묻히자 구단 관계자와 협의에 따라 계약을 파기하기로 했습니다.

노츠카운티 홈페이지 / 구단 연습장

노츠카운티에서는 공식적으로 발표하길 캠벨은 노츠카운티가 세운 계획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이유를 밝혔으나 솔 캠벨은 예전부터 토트넘에서 런던 북구 지역 라이벌 구단인 아스날로 자유 이적한다거나 아스날 소속 당시 경기 중 교체를 당하자 화를 내며 짜증내다가 그대로 그냥 집으로 가버리는 등 빈번한 막무가내 행동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었습니다.
(해외 리그에서는 선수가 라이벌 팀으로 이적하는 것은 팬들에게 치명적인 배신으로 여겨집니다. 최근 맨유에서 맨시티로 이적한 테베즈가 그 예입니다. 물론 맨유에서 호응적으로 나오지 않아서 이적했지만 테베즈가 지역 라이벌팀인 맨시티로 이적했다는 이유로 팬들은 맨체스터 더비에서 그에게 야유를 보내고 동전 투척까지 하는 악의적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현재 영국 언론은 여러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데일리 메일'은 솔 캠벨이 4만 파운드의 주급을 받으면서도 노츠 카운티를 떠난 이유는 캠벨이 리그2에서 뛸 실력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며 비난한 반면 해리 레드냅 현 토튼햄 감독은 '더 선'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솔 캠벨은 4부리그에서 뛰기에는 아까운 선수'라며 옹호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문제는 언론에서 어떻게 머라하거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입니다.

FIFA(국제축구연맹)의 규정에 따라 내년 1월까지 그 어떤 팀과도 계약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규정에 선수가 한 구단으로 이적시 다음 이적시장이 열릴때까지 다른 어떤 팀과도 계약을 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캠벨은 과거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함께 활약한 앨런 시어러 감독의 복귀가 점쳐지고 있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입단을 추진했으나 FIFA규정에 말목을 잡혔고 현재 35사의 나이인 노장 수비수 캠벨에게 3개월가량의 공백은 은퇴위기가 될 수도 있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캠벨은 이러한 상황에도 노츠카운티를 떠난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고 합니다.

캠벨은 '잉글랜드 4부 리그에서 충분히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지난 모어캠브전 패배로 모든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캠벨은 역시 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행위의 달인이라 볼 수 있네요~!!!

한편 노츠카운티의 회장은 캠벨의 이름을 새긴 유니폼은 전부 교환해 주겠다고 약속해 화가 난 팬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PS. 솔 캠벨의 베스트 프렌드인 앤디 콜의 말에 의하면 노츠카운티가 자신에게도 이적 제안을 했었다고 하며 그것을 거부하길 잘 했다고 합니다. 또한 캠벨이 입단 후 전격적인 지원이 될 줄 알았는데 노츠카운티의 회장은 선수만 사더니 최근에는 포뮬러 F1에 빠져서 구단관리에 소흘해졌다고 합니다. 앤디 콜의 생각은 그것때문에 솔 캠벨이 해약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2009년 8월 1일 토요일

英명장 보비 롭슨경, 세계 축구계의 별이 지다.



ⓒGreig Cowie/BPI/스포탈코리아

세계 축구계를 이끌던 명장인 보비 롭슨경이 31일낮(현지시간) 암으로 작고했습니다.

영국 "BBC"는 "전 잉글랜드 국가대표 감독 보비  롭슨경이 오랜 시간 투병해 온 암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작고했다."라고 전했습니다.

1933년생인 롭슨 경은 현역시절 공격수로 풀럼, 웨스트브롬위치에서 활약했고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총 20회의 A매치에도 출전하는 등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으며 1968년 현역 은퇴 직후 풀럼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1969년부터 입스위치타운을 이끌며 UEFA컵을 정복하기도 했습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을 8강에 올려두었으나 8강전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사건으로 탈락하는 불운을 맞이하기도 했으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때 잉글랜드 대표팀을 4강에 올려두었고 이후 지도자로 유명세를 타 PSV아인트호벤, FC바르셀로나, 스포르팅 리스본, FC포르투, 뉴캐슬 유나이티드 등 국경을 초월한 지도자의 인생을 거치며 축구계에서 성공적인 발판을 닦았습니다.

롭슨경은 특히 포르투시절 자신의 통역일을 하던 조세 무리뉴를 바르셀로나 로 갔을때 코치로 임명하여 조셈 무리뉴가 세계적인 명감독으로 거듭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호마리우, 호나우두, 폴 개스코인 등 개성이 강한 선수들을 이끌며 성공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와 명장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롭슨경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을뻔 했는데 2005년 조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된 뒤 롭슨경은 한국 대표팀 신임감독 후보 중 한명으로 거론됐고 롭슨경은 큰 관심을 보였지만 결국 딕 아드보카드가 최종 감독이 됨으로서 한국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2004년 뉴캐슬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축구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마감한 그는 2006년 아일랜드 대표팀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되며 다시 축구계에 발을 들이는 듯 했지만 암으로 인해 2년 간 투병세월을 보내야 했고 결국 2009년 7월 31일 아침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롭슨은 잉글랜드 축구 발전에 공헌한 점을 인정 받아 2002년 기사 작위를 받았고 영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이미 헌액된 상태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잠드시길....